<마음의 형태>라는 제목으로 내면에 떠오르는 잔상을 표현하는 및 기획의도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다. 기분과 감정은 주로 자연의 원소인 물과 불로 나타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친숙한 모습일 수도 있지만 불보다 더 타오르는 물, 물보다 더 차갑게 일렁이는 불꽃처럼 그 둘의 경계는 모호하다. 한 단어로 표현되는 감정이라도 여러 형질로 겹쳐 나타나며 그 모습이 다양하고 변화되기 때문에 찰나에 포착된 잔상 그대로 담기 위해 습관화된 손의 기억이 아닌 감각만을 따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상상의 바다를 유영하는 작업에서부터 이제는 깊은 물 속으로 들어와 내면의 감정을 자신만의 표현으로 가시화하는 작업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고 있다.
그동안 숨겨오고 꾸며 만들어 온 내면의 세계를 똑바로 응시한다. 의식이 개입하기 전 최대한 빠르게 표현한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수첩에 수백장의 드로잉을 하면서 새로운 선과 색의 조합이 나올 때엔 온전한 내 것을 발견하는 희열을 느끼는데 (엄밀한 고유의 것 일수는 없다.) 그동안의 쌓여진 드로잉을 전시를 통해 온전한 내것의 결을 마주하길 바란다.
물에서 태어난 어떤 형상들을 더 매력적이고, 집요하고, 농밀한데, 왜냐하면 더 질료적이고 깊은 몽상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밀한 존재가 더욱더 근저에 참여하고, 우리의 상상력이 좀 더 가까이에서 창작 행위들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럴 때 반영들의 시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시적 힘이 돌연 나타난다. 물이 무거워지고, 어두워지고, 깊어진다. 물이 질료화한다. 그리하여 몽상은 질료화하면서 물의 꿈들을 좀 덜 유동적인, 좀 더 관능적인 몽상들에 결합시키는데, 그러면 몽상은 물을 바탕으로 뭔가를 구성하게 되며, 물을 한층 더 강렬하고 깊이 있게 느끼게 된다.
가스통 바슐라르,『물과 꿈』, 이학사, p.40
에드거 포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질료화하는 몽상 - 질료를 꿈꾸는 몽상 - 이 형상들의 몽상 너머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질료란 형태의 무의식임을 깨닫게 된다. 더 이상 물의 표면이 아니라 덩어리로서의 물 자체가 우리에게 자신의 반영들의 집요한 메세지를 보낸다. 오직 질료만이 여러 인상과 감정의 짐을 수용할 수 있다. 질료는 감정적 재산이다. ......
...... 그런 깊은 응시를 할 때 주체는 자신의 내밀한 세계도 의식한다. 그러므로 그런 응시는 직접적인 [매개없는] 감정이입이 아니요, 무절제한 융합도 아니다. 그보다는 세계에 대한,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심화된 시각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물과 꿈』, 이학사, p.88
마음의 형태라는 이름으로 그리기 시작한 드로잉은 어떠한 제약도 두지 않고 감각에 집중하여 그리고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눈을 감거나 눈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손목에 힘을 빼거나 혹은 힘껏 찍어내며 감각을 통한 선을 만들어냅니다.
떠오르는 순간의 감정과 잔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르게 그려냅니다. 그렇지만 어떤 그림은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작업하기도 합니다. 작은 수첩에 그린 드로잉을 캔버스로 옮겨졌고 때에 따라 필요한 질감을 찾기 위해 연필부터
색연필, 브러시펜, 마카, 수성흑연, 수채물감, 아크릴에 오브제를 섞는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합니다. 지금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직시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하다보면 정체불명의 덩어리진 불안감이 아니라 실은 여러 감정이 뭉쳐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드로잉을 하며 실체를 파악하는 시간을 갖고 감정을 분출하며 생겨난 활력으로 작업에 대한 기쁨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감정은 물과 불로 표현됩니다. 물은 차갑지만도 않으며 불꽃보다 뜨겁게 솟아 칠 때도 있고 얼음보다 차갑지만 액체 상태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불은 폭발하지만 차분히 고여있기도 하고 매섭도록 차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질료의 성격을 상상하며 드로잉은 조금 더 특별해지고 즐거워집니다.
어렸을 적부터 책 속의 인물과 배경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여느 소설속 삽화가 그렇듯, 상상의 세계를 표현할 때 사실적 묘사를 하게 되면 이야기가 더욱 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저는 좀 더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아크릴물감, 과슈 물감을 주 재료로 사용하여 캔버스 위에 상상의 세계를 펼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야기에 얽매여 재현과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찾은 방법이 드로잉이었습니다.
드로잉을 하며 무언가를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닌 '진짜 나만의 것'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진짜’ 란게 무엇일까요. ‘그림’에 진짜가 있을까요. 드로잉을 하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찾을 것입니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고, 누군가 원하는 그림도 아니며, 이해받을 필요가 없이 그린다는 건 작업자로서 아주 큰 사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숨기고 외면하지 않고, 마음껏 큰 자유를 누리며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취미적 작업 활동은 무엇보다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지구를 순환하는 물처럼 수면 위에 불똥이 떨어지며 시작한 드로잉은 내면의 바다 안으로 긴밀히 들어와 유영하고 있습니다. 물이 바다에서 강으로,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마음의 형태들 또한 여러 형태로 이어지고 흘러들어와 결국 삶의 의지가 될 것입니다.
글. 왼데